제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때는 가을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처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요절복통하며 자랐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웃지를 않습니다. 웃음을 짜내기 위해 개그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웃는 소리를 녹음 삽입해서 틀어줍니다. 마음의 감동을 잃어버린 시대의 모습입니다.
요즘은 복싱경기를 보면 밋밋해서 재미가 없습니다. 종합격투기(UFC)를 봐야 신이 납니다. 옛날 잔칫집에서는 갈비탕, 생선전, 잡채만 있으면 기본이 되었고 떡과 수정과만 추가하면 충분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식, 양식, 일식, 중식 등 온갖 음식이 갖춰진 뷔페 음식을 차려야 잔칫집 음식이 됩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더 빠르고, 더 많고, 더 자극적이고, 더 맛있고, 더 강렬하지 않으면 만족이 되지 않습니다. 마치 100km를 훨씬 넘어 과속으로 달리다가 과속측정기 앞에서 100km 이하로 속도를 줄이고 가면 차가 기어가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문화가 중독문화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육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쾌락 문화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철학자 한병철의 저서 「피로사회」에 보면 이 시대 문화를 ‘긍정성의 과잉’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세상에 좋은 것이 대단히 많은데 너무 많아서 문제라는 것입니다. 좋은 것들을 무조건 받아들이며 Yes! 좋습니다. 라고 반응하다보니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소위 금단증상입니다. 과소비증후군, 피로증후군, 우울증, 묻지마 폭력 등의 현대병은 모두 많아서 생긴 사회적 금단현상입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우리 삶에 No!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안됩니다. 아니오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치가 그렇습니다. 열쇠만 아니라 자물쇠도 있어야 합니다. 자동차도 가속기만 아니라 브레이크도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 축복만 아니라 고난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세속 문화에 휩쓸려가는 이유는 교회에서 영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에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고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돌려대라는 말씀에 도전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영적 감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쾌락을 자극하는 세상의 좋은 것들에 No!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적 요구에 Yes!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 감동과 반응은 이 세상에 초점을 맞추는 한 불가능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그리고 영원한 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삶의 초점을 맞추며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