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섬김입니다. 그 이유는 섬김은 감동을 만들어내고 감동은 다시 섬김을 이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섬김은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섬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그 섬김을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 드리고 섬기는 나 자신까지도 감동하게 합니다. 이것이 섬김이 가진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 영향력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섬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이 찡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섬김이 교회 안에서 큰 조화를 이룰 때 교회는 성령충만합니다. 하나님도 감동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 알카트라즈(Alcatraz)라는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은 과거에 죄수들을 가두는 교도소였습니다. 교도소 소장을 했던 워렌 더프(Warren Duff)는 죄수들을 교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섬김이라고 말합니다. 죄수들에게 남을 위해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죄수들은 자신을 쓰레기 같은 존재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섬김을 통해 남이 즐거워하고 고마워하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기도 남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쓸모 있는 존재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섬김이 만들어내는 감동의 역동
그렇다면 도대체 섬김은 왜 우리 안에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일까요? 폐지를 주워 하루 5천 원 버는 할머니가 손녀를 키우면서 200만원의 장학금을 기부했습니다. 그 소식에 우리는 형용하기 어려운 감동을 받습니다. 고개가 숙여지고 마음마저 숙연해집니다. 장학금 기부는 어디서든지 들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액수가 많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몇십억의 장학금을 기부했다는 이야기보다 더 찐한 감동이 우리 안에 잔잔히 울려 퍼집니다. 이 감동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우리 마음속에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사건들 속에 숨겨진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정해놓은 선을 넘어서는 사건에 대한 경험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기대, 상식, 기본, 의무, 등과 관련해서 상식적인 선을 그어놓고 살아갑니다. 그 선은 보통 사회가 제시하며 내가 그 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선입니다. ‘여기까지가 기본이다.’ ‘이것이 최소한의 의무다.’ ‘이것은 도리다.’ 등등의 생각들입니다. 그런데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 그 선을 넘어서는 일일 때 감동으로 경험됩니다.
폐지 줍는 할머니의 장학금 기부는 여러 선을 넘는 일입니다. 폐지를 주워 손녀를 키우며 생계를 책임질 사람이 아닙니다. 폐지를 온종일 줍는 육체적 노동을 할 나이도 아닙니다. 오히려 생계를 위해 도움을 받아도 부족할 사회적 약자입니다. 하루 5천원의 수입으로 과연 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염려의 시선도 당연한 염려입니다. 그런데 몇 년을 모아 장학금을 내놓는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온 것이며 어떤 마음을 가진 분일까하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속에 더 찐한 감동이 있는 이유입니다. 한국교회가 세상에 감동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규훈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