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족하게 하지 말라 하십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1절) 실족하게 하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가장 흔한 것이 말일 것입니다. 말투, 말의 내용, 말의 성격 때문에 상처를 입고 넘어지고 시험에 듭니다. 또 믿었던 사람의 실수나 잘못을 보았을 때입니다. 또 물질을 주고받는 일로 인해 서운해하거나 속이 상할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이해가 상충될 때도 판단하거나 정죄하므로 실족할 수 있습니다. 또 서로 다른 성격이나 기질로 인해 충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가요? 이런 문제로 주변 사람들을 실족시킨 적은 없습니까? 반대로 실족을 경험했거나 아픔을 당한 적은 없는지요? 어떤 이유에서든지 실족케하는 사람에 대해 주님께서는 책임을 물으시겠다 하십니다. 그러니 매사 조심하고 만일 그랬다면 변명을 내려놓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용서하라 하십니다.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해도 너는 용서를 하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뇌를 연구하는 어떤 분이 용서에 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많은 이들이 ‘뇌가 아프다’고 했습니다. 뇌가 아프면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프게 되는데 그 원인이 용서하지 못하고 화를 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뇌가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뇌가 쉬지를 못하고 긴장하게 되면 면역력이 저하되어 바이러스에 쉽게 노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하고 화를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역지사지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거죠.
안이숙 여사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죄인이니까, 연약하니까, 상처가 많으니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면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훈련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용서의 얘기가 나올 때마다 늘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입니다(창41-50장). 그는 형들이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용서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이는 아들들의 이름에서도 드러납니다. ‘므낫세 에브라임’(창41:51). 이러한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결국 자기도 살고 가문도 살리고 민족도 세우는 모퉁잇돌이 되었고 나아가 고대근동을 흉년 중에 살린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릴 통해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배성태목사